국회의원이 가장 많이 굴리는 차는 무엇일까. 재산 신고서의 자동차를 차종으로 묶어 보유 의원 수로 세면 답은 단 한 대로 모인다. 그랜저다. 10년째 한 번도 1위를 내준 적 없는 부동의 1위다.
흥미로운 건 정당색이다. 그랜저 52명 중 더불어민주당이 30명, 국민의힘은 16명이다. 반대로 프리미엄 라인인 제네시스·G80은 양당이 24명씩으로 같지만, 의석수(국힘 105·민주 156)를 감안하면 국민의힘 비중이 더 짙다. 같은 현대차 안에서도 ‘무난한 국민차 그랜저’와 ‘프리미엄 제네시스’가 정당에 따라 갈리는 셈이다. 차 한 대에도 자기 이미지를 의식하는 정치인의 계산이 얼핏 비친다.
10년을 펼쳐도 1위는 늘 그랜저였다. 제네시스계(G80 등)가 최근 바짝 따라붙어 2024~2025년엔 사실상 동률이 됐지만, 단 한 번도 왕좌를 내준 적은 없다. 둘 다 현대차 대형 세단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의원들의 차 취향은 10년째 ‘국산 대형 세단’이라는 좁은 박스 안을 맴돌 뿐, 본질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작 눈에 띄는 건 없는 것이다. 1~5위가 모두 내연 세단·미니밴이고, 순수 전기차는 한참 아래에야 드문드문 보인다. 거리에서 전기차 비중이 빠르게 늘던 시기에도, 의원들의 차고는 여전히 내연 대형 세단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장 보수적인 소비가 일어나는 곳이 의외로 국회 주차장인 셈이다.
왜 하필 국산 대형 세단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의정·지역구 활동에는 장거리 이동과 동승이 잦아 뒷좌석 공간과 정비 편의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수입 프리미엄 세단은 ‘과시’로 읽힐 부담이 따른다. 그랜저·제네시스는 그 부담 없이 같은 체급을 채워 준다. 52명이라는 그랜저 쏠림은 취향이라기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차에 요구하는 조건의 최대공약수에 가깝다.
2위에 카니발(36명)이 올라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인승 미니밴은 보좌진과 함께 지역을 도는 동선, 현장 행사 장비를 싣는 실용에 들어맞는다. 결국 의원들의 차고를 채운 건 ‘무엇을 좋아하는가’보다 ‘무엇이 일에 맞는가’였다. 가장 트렌드에 둔감해 보이는 이 차고가, 실은 가장 직업에 충실한 선택의 집합인 셈이다.
다만 재산 신고는 1년에 한 번 찍는 스냅샷이라, 차량 교체 시점과 어긋나면 실제 보유와 차이가 날 수 있다. 순위는 특정 의원이 아니라 집계된 차종을 가리킨다.